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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cernews 2018-05-23 00:02:09
제        목   [Cheer Up 신태용] "아빠 그리고 형들, 정말 잘했으면 좋겠어요"



스포탈코리아는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가 열릴 때까지 [Cheer Up] 릴레이 코너를 연재합니다.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은 러시아로 가는 23인 싸움은 물론 세계로 경쟁의 장을 넓히는 태극전사들에게 각별한 인연이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편집자주>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축구계 부자(父子).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차두리 현 대표팀 코치가 그랬듯, 신태용 현 대표팀 감독도 축구 집안을 꾸렸다. 부친 영향을 받아 걸음마를 뗐다. 장남 신재원도, 차남 신재혁도 현재 볼을 찬다.

부친이 축구 선수로, 지도자로 먼저 길을 걸었다는 것. 누릴 게 많다. 더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바라볼 법하다. 간단한 피드백마저도 값지다. 반대로 잃는 것도 많다. 또래와 달리 대중의 시선을 견뎌야 할 때가 있다. 고려대에서 뛰는 신재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생 고학년 무렵 부친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니 감독 아들로만 근 10년이다.

"부모님이 원래는 축구를 안 시키려 하셨어요. 처음에는 미니 골대 놓고 놀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시작했어요. 아빠가 2009년 성남 일화 감독이 되면서 가족이 다 한국으로 갔고, 저 혼자 호주에 남아서 계속 축구를 했거든요. 매일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하고 그랬어요"

"아빠가 감독이 되고 나서부터 문자 중계로 챙겨 보게 되더라고요. 제일 기억에 남았던 게 201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였거든요. 축구부 형들이랑 숙소에서 보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 아빠가 감독이 맞구나'라고 느꼈죠. 일본 가서 우승하고, 나중에는 인터 밀란이랑도 붙고. 신기했어요"





호주에서 축구를 시작한 신재원은 한국으로 건너왔다. 축구 명문 울산 학성고를 거쳐 고려대로 향했다. '신태용 감독 아들'이란 꼬리표가 따라붙기 시작한 시기다. 신 감독이 프로팀에 이어 대표팀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접점도 있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때가 딱 그랬다. 1997년생 이하로 꾸린 팀은 1998년생 신재원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출발부터 선을 그었다. 2014 AFC U-16 챔피언십 멤버였던 신재원의 U-20 월드컵 꿈은 뿌리도 못 내렸다.

"동생은 아직 부담이 된다던데, 저는 '신태용 아들'이란 말을 아예 내려놨어요.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잘해야 아빠가 욕을 안 먹는다'란 게 생겼어요. 어렸을 때는 제 기사에 악플이 훨씬 더 많이 달렸으니 지금은 뭐... 아빠가 U-20 감독이 됐을 때 아침 먹으면서 아예 못을 박으셨어요. '나한테는 네가 최곤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미안하다'고요. 저도 그 전 감독님 계실 때는 경쟁도 해보고 싶고 목표도 있었는데, 아빠 일 이후로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챙기려 했죠"

신 감독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국가대표팀으로 향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과는 달랐다. 코치가 아닌 수장으로 들어섰다. 올림픽 대표팀, U-20 대표팀에서 쌓은 업적 덕에 지난해 7월 기술위원회의 최종 간택을 받았다. 월드컵 본선행마저 불투명했던 때, '누가 독이 든 성배를 드느냐'에 눈길이 쏠렸던 시기다.

"다들 '네 아빠가 대표팀 감독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저도 여쭤봤어요. 그땐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기사 보고 난 다음에 알았는데요. 아빠가 대한민국 축구에서 인정받으셨구나 싶어 자랑스러웠죠. 그런데 최종예선 9~10차전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거 지면 축구계에서 완전 아웃될 상황이었잖아요. 이란전, 우즈벡전 다 마지막까지 마음 졸이면서 봤죠"





신 감독은 몇 달간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탔다. 본선 티켓을 따낸 직후부터 새로운 감독 선임설에 시달려야 했다. 곱지 않은 시선은 10월 A매치까지도 그대로 갔다. 완전체가 아니었다 하나,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아쉬웠다. 11월에는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4-4-2로 싸운 콜롬비아전, 세르비아전에서 희망을 봤다. 이어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 터키 전지훈련, 3월 북아일랜드-폴란드 원정 등에서 달고 쓴 맛을 다 봤다.

"아빠가 작년 9월 한국에 오자마자 '억울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최종 32개 팀에 올려놨더니 주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서 욕을 먹게 됐다고요. 안쓰럽기도 했죠. 10월에 러시아, 모로코랑 할 때는 결과에 큰 신경을 안 썼는데 너무 크게 깨져버리니까... 여론도 많이 안 좋아졌잖아요? 콜롬비아, 세르비아랑 할 때 다시 바뀌었고, 동아시안컵 때도 괜찮았고. 이게 참 묘한 거 같아요"

여론은 요동쳤다. 하필 조 편성도 녹록지 않았다. 마지막 두 자리를 놓고 벌인 숨 막혔던 순간. 한국이 불린 조에는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 버티고 있었다. '3전 전패'를 예상하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한편으로는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겠다"던 신 감독을 향한 응원 분위기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조 편성 당시 이란이 유럽 두 팀 쪽 가길래 '다행이다' 싶었고. 마지막에 '일본이 F조만 가면 되겠다' 했는데 그게 한국이 됐더라고요. 아빠가 리우 올림픽 때 독일이랑 멕시코는 해봤으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전만 잘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거란 생각도 해봐요"





대표팀은 21일 서울광장에 모였다. 축구팬 앞에서 출사표를 던지며 출항을 선언했다.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집결한 대표팀은 주중 훈련 뒤 대구와 전주를 차례로 찾는다. 오는 28일 온두라스, 내달 1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두 차례 스파링으로 국내 일정을 마무리한다.

고민도 많다. 부상자가 몇 명씩이나 나왔다. 각각 복숭아뼈, 갈비뼈가 부러진 김민재와 염기훈은 아예 제외됐다. 무릎이 좋지 않은 김진수는 28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대회 출전 여부는 미지수다. 신 감독은 "플랜A와 B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밝힌 상태다.

"제가 주말마다 아빠한테 물어보는 게요. '대표팀에 다친 형들 또 없어요? 다른 국가는요?'예요. 우리만 계속 다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워요. 꼭 필요한 선수가 부상 당한다는 게 더하죠. 경기에 내보내면서 키워놓은 선수를 정작 필요할 때 못 쓰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월드컵이 기대는 돼요. 제가 대표팀 형들의 감정을 완벽히 느껴볼 순 없겠지만, 정말 모두 잘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이후에도 부상자는 속출했다. 권창훈이 아킬레스건 파열, 이근호는 무릎 내측부인대 파열로 낙마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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